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필산 전투 (문단 편집) === 초반의 맹공과 당나라의 위기 === || [[파일:주필산전투2.jpg|width=100%]] || [[파일:주필산전투3.jpg|width=100%]] || 다급히 후방으로 달려오는 장손무기와 이세적군과 6군을 제압하는 고구려군. >고연수 등이 이세적의 군대가 홀로 포진한 것을 보고 군사를 정돈하여 싸우고자 했다. >{{{#!wiki style="text-align:right" '''《자치통감》''' 권198, 정관 19년 6월 22일 무오}}} 고연수와 고구려군의 주력부대는 이세적군과 6군을 향해 진격하였다. 사서의 기록에 의거한다면 당시 이세민의 6군과 이세적군은 서로 거리를 멀리 두고 포열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에 따라 고연수와 고구려군은 곧바로 이세적의 군대를 향해 돌진했고, 거의 비슷한 시점에 고혜진과 말갈기병들은 이세민의 부대를 향해 돌격했다. >'''주필산 전투에서 6군(친위대)은 고려(군)에게 제압당했고, 태종이 흑기(이세적의 대장기)를 살펴보라 명하였는데, 척후병이 흑기가 포위되었다 보고하니 황제가 크게 두려워하였다.''' >{{{#!wiki style="text-align:right" '수당가화(隋唐嘉話)上, 中華書局 10~11쪽}}} 당나라군 역시 포위섬멸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고구려군의 기세는 충천했고 이세민의 6군은 순식간에 고구려군에게 제압당했다. "흑기가 포위당했다"는 사서의 기록으로 미루어 추정컨대, 고구려군의 중앙이 서로 분리하여 포진한 이세민의 부대와 이세적의 부대 사이로 돌파하고, [[칸나이 전투|이에 따라 이세적의 부대가 삼면으로 고구려군과 대치]]하여 사실상 압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말갈기병들이 황제의 진을 침범, 다시 말해 황제와 그 직할병력의 중앙을 돌파해 들어갔으며, 당나라의 횡진을 사분오열시키는 수준으로 몰아붙였다. 이세민의 기병들이 전투기병들이었다면 이 때 이세적과 이세민 사이로 돌파하는 고구려군을 충분히 막아냈겠으나, 말갈기병의 돌격에 속수무책으로 황제의 진영까지 관통당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세민의 기병들은 전투기병이 아닌, [[드라군|이동할 때만 말을 타고 전투할 때는 내려서 방진을 치는]] 군대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대로 당나라군이 밀렸다면 이세민은 '''살수대첩의 재림'''을 보았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